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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중대에서 싸우고, 같은 소대에서 정찰명령을 받는 식이다.포에니 전쟁 때는 로마 시민만으로 편성된 군단이 주력부대였다. 주력부대라는 것은 그만큼희생도 컸다는 뜻이다.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 희생은 평등해진 대신 다른 모든 것이 불평등하게 변해버렸다.자기들한테는 병역이 의무인데, 로마 시민병에게는 직업이다. 로마는 어쨌든 동맹국에 대해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충실히 지켰고, 따라서 로마의 지원제는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었기때문이다. 또한 '동맹자'들도 로마의 패권 확대를 도와주었는데, 패권 확대에 비례한 시장확대에서는 무료영화 보는 곳 로마 시민권 소유자가 훨씬 많은 이익을 본다는 사실이 무료영화 보는 곳 차츰 분명해졌다.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단순히 계산한다 해도 다음과 같은 가설이 성립된다.기원전 146년에 카르타고가 멸망했을 때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린 카르타고인 가운데 10세 소년이 있다고 하자. 그때 포로가 되어 노예로 팔린 카르타고인은 여자들까지 포함하여5만 명이나 되니까, 영리한 10세 소년이 그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영리하게 생긴 모습이 소년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그를 산 것은 원로원 의원이었다.소년은 그 귀족 집에서 의원의 아들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다, 외국 아이에게 교육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점에서 고대 로마인은 얼마 전까지의 영국인과 비슷했다.소년은 라틴어는 물론 그리스어까지 무료영화 보는 곳 유창하게 구사하는 청년으로 성장하고, 무료영화 보는 곳 주인은 이 젊은 노예에게 그리스 상인과의 통상을 맡긴다. 원로원 의원은 '장사'에 종사하는 것이 법으로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해방노예(리베르타스)나 노예의 명의로 장사에 종사하는 원로원 의원이 많았다.카르타고 태생의 노예는 '장사'로 뒷돈을 벌고 있는 원로원 의원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된다. 주인은 그에게 자유를 주어 그 공로에 보답할지도 모른다. 공짜로 자유를 되찾을수는 없다 해도, 이런 일에 종사하는 자에게는 노예라도 보수를 주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에, 카르타고 태생의 노예도 저축한 돈으로 자유를 살 수 있었다. 어쨌든 그의 신분은 해방노예로 바뀌었다. 이름도 무료영화 보는 곳 이제는 로마식으로 바뀌었다. 옛 주인의 개인 이름(프라이노멘)과옛 주인의 일족 이름(노멘)을 그대로 물려받고, 거기에 카르타고 시절의 가문 이름(코그노멘)을 덧붙인 이름이다. 성을 보면 출신을 알 수 있으므로 이것 역시 차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성이 그리스나 오리엔트나 에스파냐 출신임을 나타내는 사람은 그 당시 로마에는 수두룩했다.해방노예만 되면 로마 시민권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라쿠스 형제의아버지가 3만 아세 이상의 재산을 갖고 5세 이상의 아들을 둔 해방노예에게 로마 시민권 취득을 인정한 것은 카르타고가 멸망하기 20년 전의 일이었다.따라서 이 무렵 65세가 된 카르타고 출신의 해방노예는 무료영화 보는 곳 이미 완전한 로마 시민권 소유자라는 가설이 성립된다.무료영화 보는 곳 반면에 '로마 연합' 동맹시의 시민으로서 카르타고 공략전에 종군했던 사람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는 물론, 그의 아들까지도 동맹시 시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로마 시민권을 갖지 못한 채 불리한 처지를 계속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사정이 이래서는 이탈리아인(이탈리쿠스)들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것도 당연하다. 로마 시민권 문제를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제기했을 당시에는 이 문제에 대한 자각이 아직 여물지않았던 그들도, 그후 30년 동안의 상황 변화 속에서 로마 시민권을 갖지 못한 탓에 겪게 되는 불리함을 분명히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로마 연합'의 맹주는 어디까지나 로마다. 이탈리아인들이 무료영화 보는 곳 요구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평등이 아니라, 로마 시민권을 가짐으로써 누릴 수 있는 평등한 대우니까, 로마가 허락하지 않는 한은 실현되기 어렵다. 하지만 호민관이 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ㅊ제안자인 호민관이살해될만큼 로마 사회가 혼란스러워진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문제가 시민권에 미치면, 로마에서는 무산자(프롤레타리아)조차도 기득권 수호에 나서기 때문에, 그 반대는 난공불락의 철벽으로 변했다.이탈리아인들의 마음속에서 시민권 문제는 이제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만큼 물이 채워진항아리 같은 상태에 있었다. 1만 명의 이탈리아인을 동원하여 로마로 시위 행진을 벌이자는이야기까지 나오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나설 테니까 무료영화 보는 곳 참아달라면서 시위를 말린 사람이 바로 동맹시의 유력자들과 자주 접촉하고 있던 드루수스였다. 그가 이 법안을 제출하기로 결심한 데에는 강한 위기의식도 깔려 있었다.아니나다를까, 이 법안을 둘러싸고 민회는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반대파는 강경했다. 호민관 드루수스의 연설은 성난 시민들의 고함으로 무료영화 보는 곳 자주 중단되었다. 기원전 91년의 집정관인필리푸스는 드루수스의 법안에 반대하는 동의안을 제출했다. 토의에 들어가기 전에 호민관드루수스는 호민관에게 주어진 거부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지식인인 드루수스에게는 로마인이 말하는 '간덩이', 곧 배짱이 없었다. 그는 거부권 행사를 통한 정면 대결을포기하고 회의장을 떠나 무료영화 보는 곳 집으로 돌아갔다. 그를 지지자들이 호위했지만, 그들 속에 반대파가섞여 있는 것을 무료영화 보는 곳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도중에 드루수스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쓰러진 호민관 옆에는 제화공이 사용하는 작은 칼이 버려져 있었다. 드루수스는 다음의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로마인은 언제나 나와 같은 인물을 가질 수 있을까,"유복한 보수파보다 더 완고한 수구파로 변하는 푸어 화이트(미국 남부의 가난한 백인)는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는 법이다.호민관 드루수스의 암살은 이탈리아인들에게는 결정타와 비슷한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되었다. 그 한 방울이 떨어짐으로써 항아리가 가득 차 있던 물이 넘쳐흐른 것이다. 시민권문제가 온건한 방법으로는 무료영화 보는 곳 실현되기 어렵다고 생각한 '동맹자'들은 절망했다. 여러 부족 사이에 은밀한 연락이 오가기 시작했다. 드루수스를 제거함으로써 시민권 문제를 조기에 처리했다고 안심한 로마인들, 특히 위정자 계급인 원로원은 이탈리아인들의 이런 움직임에 주의조차 기울이지 않았다.해가 바뀌기도 전에 역사상 '동맹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전쟁이 일어났다. 마치평원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들불이 일어난 것 같았다. 이탈리아 반도의 중부와 남부에사는 여러 부족들이 일제히 무장 봉기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로마 연합'에 가맹한 도시국가들이었다. 250년 동안이나 로마의 동맹자였던 그들이 맹주 로마에 반기를 무료영화 보는 곳 들고 일어난것이다.봉기한 부족들을 무료영화 보는 곳 북쪽부터 차례로 열거하면, 아드리아 해안 쪽의 피첸토족, 베스티노족,마루키노족, 내륙으로 들어가서 파엘리노족, 마르시족, 남쪽으로 내려가서 역시 아드리아 해안의 프렌타노족, 산악 부족인 삼니움족, 이탈리아 남부의 히르피노족 등, 처음 궐기했을 당시만 해도 8개 부족이 된다.루비콘 강 이남의 로마 연합 전역에서 북쪽에 해당하는 일대에 사는 에트루리아인과 움브로족은 아직 태도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남부의 풀리아 지방과 칼라브리아 지방이참전한 것은 전쟁 2년째에 접어 든 뒤였다.또한 로마가 전략 요충으로 건설한 식민시(콜로니아)들 가운데 이주자가 로마 시민인 '로마 식민시'들은 당연히 로마 편에 섰다. 이주자가 라틴 시민권 무료영화 보는 곳 소유자인 통칭 '라틴 식민시'들도 베누시아 한 곳만 빼고는 모두 로마 편에 남았다. 그들은 다른 라틴 부족과 마찬가지로 투표권이 없는 로마 시민권은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마저 없어서 봉기한 '동맹자'들에게 동조할 이유가 없었다.이들 외에 로마 편에 남은 동맹자로는 로마 영토 남쪽에 펼쳐져 있는 캄파냐 지방의 그리스계 주민들이 있었다. 이들도 로마 시민권을 갖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봉기한 '동맹자'들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캄파냐 지방에는 비옥한 경작지가 많다. 게다가 주민들은 주로 상과 공에 뛰어난 그리스인이다. 나폴리, 폼페이, 베스툼 등 풍요로운 도시가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이 캄파냐 지방이었다. 이곳 주민들은 여러 면에서 무료영화 보는 곳 로마인과 대등했다. 게다가 무료영화 보는 곳 도시국가 내의 자치는 보장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로마 시민권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요소에 불과했다.요컨대 기원전 91년 말에 일어난 동맹시 전쟁은 '로마 연합' 동맹국들 중에서도 비교적가난한 지방의 주민들이 일으킨 반란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어쨌거나 로마에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130년 전의 제2차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이 그토록 원했는데도 끝내 이루지 못한 로마연합의 해체가 이제 실현되었다. 트레비아, 트라시메노, 칸나에 등지에서 로마가 한니발에게참패를 맛본 시대에도 로마를 배반하지 않았던 '동맹자'들이 로마에 등을 돌린 것이다. 정치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동맹시 전쟁'은 로마에 통렬한 타격을 의미했다.북동쪽과 동쪽 및 남동쪽의 세 방향에서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다. 북쪽의 움브로족과 북서쪽의 무료영화 보는 곳 에트루리아인도 아직은 태도를 결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아니, 병력을 소집하기 시작했다는 정보마저 들어오는 형편이었다. 서쪽과 남서쪽에는 티레니아 해가 있다. 로마가 건설한 가도 덕분에, 반란군은 아무리 먼 곳에서도 한 달 남짓만 행군하면 수도 로마의 성벽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로마의 지배에 반대하여 봉기한 여덟 부족은 연합하여 독자적인 정부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나라 이름은 이탈리아, 신생국 이탈리아의 수도는 아펜니노 산맥 기슭에 있는 코르피니움으로 정했다. 국가 형태도 결정되었다. 최종 결정권을 갖는 민회와 500명의 유력자로 이루어지는 원로원, 매년 두 명의 집정관이 선출되어 역시 선거에서 뽑히는 12명의 법무관과 함께 절대 지휘권을 쥐고 군사와 정치를 담당한다. 공용어는 라틴어, 일반 통용어로는 삼니움어와 그밖의 방언을 사용하기로 결정되었다. 이탈리아 건국을 기념하여 8명의 전사가 칼을맞대고 있는 도안의 기념 주화까지 만들었다.'동맹시 전쟁'은 오랫동안 함께 산 부부 가운데 아내가 남편한테 이혼장을 내던진 것과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것은, 무료영화 보는 곳 아니 어쩌면 이것도 비슷한 무료영화 보는 곳 점일지 모르지만 이혼장을 내던진 쪽이 자기네 권리를 로마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서 실력 행사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신생국 이탈리아의 수도가 된 코르피니움과 로마의 거리는 불과 120 킬로미터밖에 안된다. 게다가 로마에서 코르피니움까지는 기원전 4세기 무렵부터 로마인들이 건설한 발레리우스 가도가 뚫려 있었다.'동맹시 전쟁'은 모든 의미에서 로마에 뼈아픈 타격을 주는 사건이 되었다. 지금까지 로마군단에서 동맹시 출신 병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추측해 보아도, '로마 연합' 군대의 절반이나 되는 병력이 빠져나가 버린 셈이 된다. 빠져나간 것은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로마 집정관밑에서 참모나 장로로 일하고 있던 동맹시 출신 장교들 중에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도적지 않았지만, 무료영화 보는 곳 그들도 고향 사람들과 행동을 같이했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같은 무료영화 보는 곳 막사에서 잠자고 한솥밥을 먹으며 함께 싸웠던 사람끼리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싸우게 된 것이다.이탈리아인들이 장교부터 졸병에 이르기까지 로마인의 전술을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무장 봉기하자, 로마인들은 오랫동안 신뢰를 나누었던 '동맹자'들과 칼을 맞대야 하는 꼴이 되었다.아닌 밤중에 홍두깨였지만, 로마인들은 당장 사태의 중대성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각지에서 동시에 타오른 불길은 모두 수도 로마를 겨냥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어쨌든 로마와 반란지역은 로마 가도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반란군이 로마를 노리기도 쉽다. 하지만 가도를 따라 쳐들어올 적으로부터 수도 로마를 지키는 것은 전략 요충마다 건설되어있는 '식민시'들이다. 이 식민시들은 아피아 어도 연변에 있는 베누시아를 빼고는 모두 로마 편에 남아 있었다. 반란군은 반드시 식민시를 우선 공격할 거라고 로마인들은 생각했다.기원전 90년 초, 로마도 적을 맞아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우선, 캄파냐 지방에 선을 무료영화 보는 곳 긋듯이 하여 전선을 북부와 남부로 나누었다. 기원전 90년의 집정관으로 선출된 푸불리우스 루틸리우스 루푸스가 북부 전선, 역시 집정관인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남부 전선의 총지휘를 맡기로 결정되었다.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그해에 10세 소년이었던 '로마가 낳은 유일한 천재'의 큰아버지에 해당하는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 두 집정관 휘하에는 반란군과의 충돌이 예상되는 지역마다 남북에 각각5명씩의 군단장(레가투스)이 배치되었다. 총지휘를 맡는 집정관도 각각 군단을 지휘하지만, 군단장 휘하의 군단들은 필요한 지역으로 신속히 달려가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일종의 유격대라고 할 수 있다. 로마는 총사령관이 후방에서 지휘하는 전략을 택하지 무료영화 보는 곳 않았다.총병력의 절반과 수많은 장교가 적이 되어버렸지만, 전략적 사고는 로마인들 편에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군단장들의 면면을 얼핏 보기만 해도 로마가 옛 동지들과의 싸움에 최고의 카드를 무료영화 보는 곳 내놓았음을 알 수 있다.집정관 루푸스가 총지휘를 맡은 북부 전선에서는 게르만족을 무찌른 승장 마리우스가 67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재등장했다. 폼페이우스의 아버지인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스트라본도 최전선에 나섰다. 집정관 카이사르가 총지휘를 맡은 남부 전선에는 48세의 무르익은나이에 이른 술라를 선두로, 아직은 24세의 청년이지만 훗날 폼페이우스 및 카이사르와 함께 삼두정치의 일익을 담당하게 될 크라수스도 군단장에 임명되어 있었다.이에 대항하는 이탈리아 쪽도 로마와 똑같은 진형을 짰으니 놀랄 수 밖에 없다. 북부 전선의 총지휘는 마르시족 출신의 퀸투스 포페디우스 실로가 맡았고, 남부 전선의 총지휘는삼니움족 출신의 가이우스 파필루스 무틸루스가 맡았다. 이 두 명의 총사령관 밑에 5명 정도의 군단장이 있는 것도 로마와 같았다. 게다가 총사령관 이하 모든 병사의 개인이름까지로마식인 것에는 놀랄 수밖에 없다. 이렇게 서로 가까운 상대가 참다 못해 울화통을 터뜨리고 무료영화 보는 곳 말았으니, '동맹시 전쟁'은 로마의 정치적 실책이었다.도처에서 전개된 전투에 참가한 병력은 로마와 이탈리아가 각각 5만명, 반란군에 대항할병력이 모자란 로마는 갈리아와 누미디아에 지원군을 요청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전쟁 2년째인 기원전 90년의 전황은, 전반에는 이탈리아가 우세했고 후반에는 로마의 우세로 끝났다. 어쨌든 고대 역사가의 말을 빌리면, '털구멍 수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대'끼리 싸운 것이다. 각지에서 벌어진 싸움은 격전의 연속이었다. 로마는 북부 전선의 총지휘를 맡은 집정관 루푸스를 잃었다. 남부 전선에서도 군단장 두 명이 전사했다. 이탈리아 쪽의희생도 컸지만, 로마군도 전사한 병사들의 유해를 수도 로마로 후송하여 화장할 여유가 없어서, 전사한 자리에 그대로 매장하기로 결정했을 정도였다로마 쪽에서 활약한 것은 술라다. 속공을 구사한 그의 과감한 전술에 대항할 수 있었던지휘관은 이탈리아 쪽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마리우스의 지휘 방법은 전과 달리 소극적으로 변해 있었지만, 그가 모습을 나타내기만 해도 이탈리아 쪽은 장군도 병사도 모두 무료영화 보는 곳 마리우스 휘하에서 게르만족을 상대로 싸우던 시절을 무료영화 보는 곳 생각하고 그만 주눅이 들어버렸다.덕분에 마리우스가 지휘를 맡은 군단은 결정적인 승리도 얻지 못했지만 패배를 당하지도않았다.기원전 90년 겨울을 맞아 양군 모두 일단 칼을 거두는 계절이 되었다. 동료 집정관 루푸스가 전사했기 때문에, 집정관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수도로 돌아가 민회를 소집할의무가 있었다. 그는 민회를 소집했을 뿐만 아니라, 민회에 법안 하나를 제출했다. 이 '율리우스 시민권법'(렉스 율리아 데 키비타테)은 '동맹시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동맹자'들이 요구한 것, 곧 로마 시민권 취득을 전면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하지만 이 법에는 로마에 겨누고 있던 칼을 거두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집정관카이사르가 제안한 '율리우스 시민권법'을 로마 민회는 가결했다. 이번에는 성난 고함소리도없었고, 제안자가 암살당하지도 않았다.로마인들은 정치적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군사력으로 밀어붙여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지기보다는, 정치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무료영화 보는 곳 쪽을 선택한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명분은 '이탈리아인' 쪽에 있었다.결과는 당장 나타났다. 태도를 결정하지 않고 있던 에트루리아인과 움브로족이 로마 편에가담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북부 전선에서 패하여 코르피니움을 로마에 내준 뒤로는 수도의소재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형편이었다. '율리우스 시민권법'의 성립으로 전쟁 목적이 사라진이상, 사기가 떨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남부 전선에서는 기원전 89년 내내 전투가 계속되었지만, 그것은 북부 전선에서 패한 마르시족의 우두머리 실로가 남부 전선의 주력부대인 삼니움족에 가담하여 분투했기 때문이다.싸움의 대의명분은 사라졌어도, 싸우는 동안에 싹튼 증오는 남게 마련이다. 증오만 있으면, 그리고 거기에 불을 붙일 지휘관만 있으면, 전쟁은 계속되는 법이다. 이런 이유로 산악지방에 틀어박혀 저항을 계속하는 잔당이 조금은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동맹시 전쟁'은 사실상 기원전 89년에 끝났다.남부 전선의 영웅이었던 술라도 그해 말에는 로마로 돌아갈 수 있었다. 로마가 수렁에 빠질 게 뻔하다고 생각했던 오리엔트 군주들은 예상외로 빨리 해결된 것을 알고 낙담했다.'율리우스 시민권법'은 오랜 '동맹자'가 이혼장을 들이밀었을 때에야 비로소 성립되었지만, 단지 '동맹시 전쟁'을 끝내는 역할만 무료영화 보는 곳 맡은 것은 아니었다. 이 법은, 귀족과 평민이 공직에 취임할 기회를 균등하게 함으로써 두 계급간의 오랜 항쟁을 끝낸 기원전 367년의 '리키니우스 법'과 맞먹는 획기적인 법, 즉 로마 국가의 방향 전환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20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강철같은 결속을 자랑했고, 한니발을 비롯한 외세조차도 그사실을 인정한 바 있는 '로마 연합'은 마침내 해체되었다. 나풀리에 사는 그리스계 주민도,토스카나 지방에 많이 사는 에트루리아인도, 이탈리아 반도를 등뼈처럼 달리는 아펜니노 산맥에 사는 산악 부족도 모두 로마 시민이 되었다. 이탈리아인(이탈리쿠스)은 이제 없어졌다.이탈리아인이 되살아나려면, 이로부터 1천 950년 뒤에 근대 국가 이탈리아가 탄생할 때까지기다리지 않으면 안된다.그러나 기원전 90년의 '해체'는 130년 전에 한니발이 원했던 형태의 해체는 아니었다. 발전적 해체라고 하는 편이 적절한 표현인 형태의 '해체'였다. 도시국가 로마를 떠받쳐온 로마연합이 해체됨으로써, 로마는 무료영화 보는 곳 이제 도시국가를 초월한 새로운 형태의 국가로 진입하게 되었다.아테네로 대표되는 도시국가는 그 국가의 핵심적 도시에 사는 시민들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국가였다. 따라서 시민의 자치는 무료영화 보는 곳 당연한 이치이고, 거기에 참가하려면 시민권을 가지고있어야 한다는 것도 역시 자명한 이치였다. 민주정 체제의 아테네는 물론, 왕정 시대와 공화정 시대의 로마에서도, 전쟁을 선포하거나 강화를 체결하는 것으로 상징되는 국가의 최고결정권이 민회에 있었던 것은 정치체제와 관계없이 양국이 모두 도시국가였기 때문이다.이런 종류의 '주권재민'은 그것을 존중할수록 외부에 대해 폐쇄적이 될 수밖에 없다. 주권자인 시민이 갖는 권리는 평등해야 하고, 그 평등은 폐쇄를 통해서 이질적인 분자를 배제하는 방법으로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민주정 체제의 아테네에서는 부모가 모두 아테네인이 아닌 한 아테네 시민권을 갖는 것이인정되지 않았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오랫동안 아테네에 살면서 무료영화 보는 곳 리케이온이라는학교를 창설하여 아테네 문화 향상에 이바지한 사람도 끝내 아테네 시민권은 얻지 못했다.공동체 내부에서의 완전 평등을 금과옥조로 삼으면, 이질분자(바르바로이)를 배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명문 귀족, 평민귀족, 기사계급, 평민층, 무산자, 해방노예,노예, 파트로네스, 클리엔테스 등의 구별이 존재한 로마 사회에서는, 일단 이질분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뒤에는 저항도 적었을 것이다. 차별과 구별은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계층간의 경직화를 피하려는 노력을 잊어서는 안된다. 로마에서 사회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각 계층간의 교류가 경직된 경우다.아테네인이 생각한 동포는 같은 피가 흐르고 같은 땅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로마인이 생각한 동포는 단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에 노예였든 카르타고 무료영화 보는 곳 태생이든, 전혀 관계가 없다. 라틴어를 쓰든 말든, 그것조차도 관계가 없다. 로마 시민권을 취득한 순간부터 그 사람은 동포가 된다.로마인은 원래 시민권을 주는 데 대범했다. 하지만 제1권에 기술된 시대의 시민권은 이점이 적었다. 그래서 '로마 연합' 동맹시의 시민들은 굳이 로마 시민권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다. 건국하는 과정에는 어떤 나라도 이질분자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패권국이 된이후에도 이질분자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국가는 드물지 않을까.로마인들도 이점이 많아진 시민권을 이질분자에게 주는 데 오랫동안 인색했던 것은 앞에서 이미 말한 바와 같다.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이것을 처음 제안한 지 30년이 지나서야 겨우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그렇기는 하지만, 어쨌든 두번째 이정표는 세워졌다. 로마인들도 우여곡절은 겪었지만 결국은 그 이정표를 따라 무료영화 보는 곳 나아가게 되었다. 봉기한 부족들의 우두머리들이 로마에 항복하면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로마인들이 이 전쟁을 단순한 반란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것을말해준다.'로마 연합'은 해체되었지만, 동맹도시나 동맹부족들의 본거지는 이제 로마 국가를 무료영화 보는 곳 구성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곳 주민들의 민족적, 문화적 독자성이 사라진것은 아니다. 후세의 한 연구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로마인이 실증적으로 인류에게 가르쳐준 것 가운데 하나는 각 지방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도 전체를 통합하는 보편성을 확립할 수 있다는 점이다."당연한 일이지만, 로마는 속주(프로빈키아)라는 형태로 자신의 통치하에 무료영화 보는 곳 편입시킨 지방과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들을 동맹국으로 삼고 있었다. 로마는 이런 동맹국에 대해서는 두가지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었다.첫째, 누미디아 왕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로마와 동맹국이 '파트로피스'와 '클리엔테스'의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로마는 '파트로네스'이고 누미디아는 '클리엔테스'다. 왕국이아닌 아테네나 스파르타나 마르세유 같은 로마 산하의 자치시들도 이런 종류의 무료영화 보는 곳 동맹관계에속했다. 사실상 속국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이들 나라나 도시들은 속주가 아니기 때문에 로마에 속주세를 낼 의무는 없다. 로마에 대한 의무는 로마가 군대를 출동시킬 때 그들이 장기로 삼는 분야, 예를 들면 누미디아의 무료영화 보는 곳 경우에는 기병, 마르세유의 경우에는 군선을 참전시키는 것이었다.두번째 부류는 로마와 통상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 중에는셀레우코스 왕조 치하의 시리아처럼 로마와 싸워서 패한 나라도 있지만, 그밖의 나라들은아직 로마와 직접 대결한 적이 없었다. 이런 부류의 동맹국으로는 로마가 '혼미'를 맞기 시작한 기원전 133년 시점에서는 소아시아의 비티니아, 폰토스, 카파도키아, 그 동쪽에 있는아르메니아,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계승자 가운데 아직 남아 있는 시리아와 이집트가있었다. 모두 다 오리엔트에서는 무료영화 보는 곳 주된 통치 체제였던 왕정을 채택한 나라들이다. 무료영화 보는 곳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영향 때문인지, 이들 나라의 왕통은 그리스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통치 방식은 모두 아시아적인 전제국가였다.이들 가운데 하나인 폰토스 왕국에서는 미트라다테스 6세가 기원전 115년부터 왕위에 앉아 있었다. 본래는 선왕이 죽은 7년 전에 왕권을 물려받았지만, 어머니가 왕위를 가로채는바람에 소아시아 일대를 방랑하며 무료영화 보는 곳 왕권 탈환을 노리다가, 17세가 된 기원전 115년에야 겨우왕권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혹한 사내였지만 영명한 군주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흉내냈는지,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나부끼는 옆얼굴을 새긴 기념 주화가남아 있다. 그것을 보아도 꽤 미남이다. 로마가 혼란기에 접어든 것을 보고, 그는 이 틈을이용하여 제국을 세우기로 결심했다.영명한 인물인 만큼 전쟁 준비는 남의 이목을 끌지 않는 방식으로 신중하게 추진했다. 폰토스 왕국의 수도는 그리스인 식민시를 기원으로 하고 있는 흑해 무료영화 보는 곳 연안의 시노프였고, 이 나라의 부의 원천은 통상보다 광산에 있었다. 전제국가인 만큼 수익은 모두 왕의 것이 된다.미트라다테스 6세는 이 수익금으로 사들인 금은보화를 수도에만 두지 않았다. 왕국 안의 각지에, 특히 내륙지방에 수많은 성채를 쌓고 그것들을 요새로 만드는 동시에 재화 보관소로삼았다. 위험을 분산시킨 것이다. 돈만 있으면, 용병제가 일반적인 오리엔트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군대를 조직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을 추진하면서 미트라다테스는 기회를 기다렸다.기원전 92년, 그의 나이 40세가 되던 해에 기회는 찾아왔다.이해에 인접국 비티니아의 왕이 죽자 후계자 다툼이 일어났다. 미트라다테스는 배후에서손을 써서 자신의 측근을 무료영화 보는 곳 왕위에 앉혔다. 곧이어 역시 인접국인 카파도키아의 왕위에도 아들 가운데 하나를 앉히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쫓겨난 양국의 왕족들은 동맹관계에 있는 로마에 호소해 왔다.강대국이란 귀찮은 입장이기도 하다. 로마의 패권하에 있지 않은 독립국끼리의 다툼이니까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고 방치해두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마는 원로원 의원으로 구성된 시찰단을파견하여 중재에 나섰다. 시찰단의 중재는 일단 성공하여 미트라다테스가 물러섰기 때문에, 양국의 왕위는 각각 정통 후계자에게로 돌아갔다.그런데 1년도 지나기 전에 '동맹시 전쟁'이 일어났다. 미트라다테스는 이 전쟁이 오래 지속될 것이고, 로마는 수렁에 무료영화 보는 곳 빠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로마는 국내 문제에힘을 쏟느라 바깥 세계에 군대를 내보낼 여유가 없어질 것이다. 그는 이틈을 타서 오랫동안품고 있던 꿈을 실현하기로 작정했다.그는 군대를 서쪽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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